나의 청춘, 음악
19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나에게는 CD, 카세트테이프, 라디오 외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뮤직비디오라는 것도 90년대 후반에 가서야 국내에도 케이블 TV가 탄생하면서 MTV 채널 등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영상이 나오면 비디오테이프에 녹화까지 하면서 소장하고 친구와 함께 보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즉 언제든지 녹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비디오 테이프를 삽입한 채로 리모컨의 녹화 버튼을 누를 준비란 말입니다. 당시 나는 국내 가요보다는 해외 POP이나 Rock, Metal을 즐겨 들었습니다. 동네마다 있던 대형 음반가게에서 용돈으로 앨범을 사 모으고 핫뮤직, GMV(지구촌 영상음악) 등의 잡지도 사 모았습니다. 이런 잡지를 통해 알게 된 팬클럽이나 음악동호회에서 신촌이나 홍대에 카페를 빌려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실황 감상회를 하면 찾아가서 보곤 했습니다. 그런 음감회를 일요일 아침에 많이 열었습니다. 국내에 발매되지 않는 음반들은 압구정동에 있었던 상아레코드와 같은 수입 앨범들을 판매하는 곳에 방문하여 구입했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상아레코드에 단체로 몰려가서 국내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희귀한 앨범들을 접하곤 했고 이 경험은 당시 너무나 설레며 수 일을 기다리던 대형 빅 이벤트였던 것입니다.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음반들은 대체로 Metal 앨범들이 많았는데 주로 가사나 앨범 재킷 등이 당시 심의에 통과하지 못하였던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외에서는 난리가 난 앨범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구경도 못하였기에, 그리고 입소문으로 그 앨범 엄청나다더라 어떤 곡이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하늘을 올려보고 주먹을 쥐고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앨범을 손에 넣을 방법은커녕 그 앨범 중 단 한 곡이라도 들어 볼 기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인터넷 이런 건 꿈도 못 꾸는 시대였고 라디오에서 심야 방송으로 들어볼 수 있었겠으나 선곡은 DJ가 하지 않았습니까.)
싱글앨범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국내에서 희귀한 앨범들을 하나둘씩 구입하여 내 방 CD 수납장에 진열하며 (진열장에서도 특석이라 할 수 있는 구석 코너에 진열됩니다.) 그걸 바라보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중 싱글 앨범에 나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싱글 앨범은 말 그대로 노래가 1~2곡, 많게나 5~6곡 정도 수록된 앨범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싱글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생소했습니다. 정규 앨범에도 수록된 곡인데 왜 굳이 한 곡만 따로 뽑아서 앨범을 만드는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가까운 일본에서도 싱글 앨범이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싱글 차트, 앨범 차트도 따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즉 어떤 곡이 빌보드 1위를 했다는 것은 싱글 차트 1위를 한 것입니다. 그 곡의 싱글 앨범 판매량과 방송횟수 뭐 이런 기준으로 가장 상위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앨범 차트는 당연히 정규앨범의 판매량 순이었을 것입니다. 싱글 시스템이 없던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순위를 정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TV 방송에서는 전화투표, 라디오 방송에서는 방송횟수, 음반샵 차트에서는 그 샵의 판매량 순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나라에는 음악시장이 상당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대표하는 차트가 없었습니다. 미국의 빌보드, 일본의 오리콘 같은 차트 말입니다. 당시 국내에서 싱글 앨범의 생소함을 설명하려다가 글이 길어졌습니다. 싱글 앨범의 매력은 가격이 저렴합니다. 정규앨범보다 분량이 적으니 당연한 것입니다. 앨범 재킷도 정규앨범과 비교하면 허접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떤 아티스트의 팬이라면 정규든 싱글이든 모두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애초에 우리의 노래를 전부 즐기고 싶으면 정규앨범을 사세요. 대표곡만 듣기를 원하시면 저렴한 싱글 앨범을 사세요. 이런 선택권을 준 것일까요? 이것도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원해요. 정규든 싱글이든 라이브든 당신 이름으로 나온 앨범을 다 가지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팬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많을 것입니다. 이런 팬들을 위한 배려인지는 모르겠으나 싱글 앨범에는 대표곡 외에도 1곡, 많게는 4~5곡 정도 더 수록하기도 합니다. 이때 실리는 곳들을 B-side 곡이라고 합니다. 카세트테이프의 A면, B면과 같이 A-side곡이 대표곡이라면 B-side는 보너스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보너스 곡들을 정규앨범에는 없는 곡을 수록하거나 기존 곡의 라이브 버전이나 또 다른 스튜디오 버전을 수록하곤 합니다. 그럼 정규와 싱글을 모두 구입하는 팬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추억의 물건입니다.
아티스트들마다 다르겠지만 정규앨범에 10곡을 수록하기 위해 곡을 만들고 녹음한다면 보통 15곡~20곡 정도 완성할 것입니다. 이중 심혈을 기울여 10곡을 추립니다. 선택받지 못한 곡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곡들을 B-side에 수록하거나, 팬클럽만을 위해 제한적으로 공개하기도 합니다. (Pearl jam이 종종 그랬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빛을 못 보고 그냥 썩혀진 곡들도 있을 것입니다. 해외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발매된 싱글앨범들을 모으곤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더이상 앨범을 구입하지 않고 소장했던 앨범들도 어딘가에 방치된채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많은 앨범들을 분실했고, 특히 싱글 앨범들은 케이스가 종이로 만들어졌기에 너덜 너덜합니다. 애초에 보관용으로 제작될 생각이 없는 것이 싱글 앨범입니다. LP는 아직도 마니아 층이 존재하고 일부 희귀 LP는 고가에 거래됩니다. 그러나 CD는 멸종된 구세대 아이템입니다.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나의 귀한 보물들을 보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