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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메탈 장르의 대표주자 (limp bizkit 역사)

by crave80 2025. 4. 6.

 

limp bizkit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록 음악계를 뒤흔든 밴드입니다. Korn과 함께 뉴메탈(New Metal) 혹은 랩메탈의 붐을 일으켰습니다. 하나의 장르를 생성하고 널리 퍼뜨린 대단한 업적을 가진 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렬한 기타 리프와 힙합과 메탈을 적절하게 뒤섞은 사운드, 헤드뱅잉보다는 어깨를 덩실덩실 흔들게 하는 그루브, 그리고 반항적인 퍼포먼스로 젊은 세대의 분노와 에너지를 대변했던 그들은 음악뿐 아니라 시대적 분위기까지 대변한 문화적 아이콘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limp bizkit의 역사와 뉴메탈 장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밴드 결성과 초기 활동 (결성, 프레드 더스트, 플로리다)

limp bizkit은 1994년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결성되었습니다. 프런트맨 프레드 더스트(Fred Durst)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출신입니다. 걸출한 랩 실력뿐만 아니라 밴드에 독특한 비주얼적 개성과 스트리트 문화를 입혔습니다. 기타리스트 웨스 볼랜드(Wes Borland)의 무서울 정도로 기괴한 분장과 강력하고 개성 있는 연주는 limp bizkit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냈고, DJ Lethal, 베이시스트 샘 리버스(Sam Rivers), 재즈드러머 출신인 존 오토(John Otto) 등 실력 있는 멤버들이 합류하면서 밴드는 빠르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1997년 첫 정규 앨범 Three Dollar Bill, Y'all$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한 limp bizkit은 데뷔 앨범 수록곡 'Counterfeit', 'Faith'(조지 마이클 원곡)로 인기를 얻습니다. 특히 조지마이클의 Faith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상큼한 분위기의 원곡을 극단적으로 강력하고 흥이 넘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곡의 초반은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름 잔잔하게 누구나 아는 그 곡을 연주합니다. 중반 코러스 직전에 수류탄이 폭발하듯 감춰온 모든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프레드의 분노 어린 랩과 웨스의 공격적인 기타 사운드가 섞이면서 새로운 장르, 즉 ‘뉴메탈’의 탄생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프로듀서 Ross Robinson은 이들의 음악적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후 투어와 MTV를 통해 빠르게 인지도를 넓혔고, 코넬(Cornell) 대학 공연 등으로 동시대 젊은 층을 사로잡습니다.


대중적 성공과 뉴메탈 열풍 (Significant Other, Chocolate Starfish, MTV)

limp bizkit의 이름을 세계적인 밴드로 끌어올린 건 1999년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Significant Other입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미국에서만 무려 700만 장이 판매됩니다. 뉴메탈이 주류 음악 시장을 이끌어가는 장르였던 시기입니다. ‘Nookie’, ‘Break Stuff’, ‘Re-Arranged’와 같은 히트곡은 MTV와 라디오를 장악했고, 프레드 더스트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락스타가 되었습니다.

특히 2000년 발표된 Chocolate Starfish and the Hot Dog Flavored Water는 이들의 전성기임을 알려주는 앨범입니다. 'My Generation', 'Rollin'', 'My Way' 등은 당시 젊은이들의 취향과 욕구를 그대로 담아내며 엄청난 호응을 받으며, 앨범은 발매 첫 주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미국 내에서만 총 800만 장이 판매됩니다. 뉴메탈이라는 장르가 림프 비즈킷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되며 Korn과 함께 Linkin Park, Papa Roach 등 수많은 밴드 후배밴드들의 탄생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림프 비즈킷은 MTV Video Music Awards와 같은 대형 시상식에서도 주요 무대를 장식했고, 메인스트림 록 음악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들의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를 넘어서 분노, 자유, 저항의 퍼포먼스였으며, 이는 뉴메탈의 정신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프레드 더스트의 카리스마, 웨스 볼랜드의 실험성, 그리고 밴드 전체의 팀워크는 이들의 정점을 만든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쇠퇴와 현재까지의 행보 (비판, 컴백, 지속되는 팬층)

2000년대 중반 이후 뉴메탈 장르의 인기는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limp bizkit 역시 여러 가지 내외부적 요인으로 급격하게 하향길로 내려가게 됩니다. 아쉽지만 뉴메탈이란 장르도 limp bizkit도 생명력이 상당히 짧았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의 대중음악처럼 굵고 짧은 반짝거림의 시초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프레드 더스트의 돌출 행동과 음악성 논란, 멤버 간 불화 등이 겹치며 한동안 팀은 공백기를 겪었습니다. Results May Vary 앨범은 상업적으로 이전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비평가과 팬들로부터 무시무시한 혹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limp bizkit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앨범 Gold Cobra를 통해 컴백했으며, 이후 투어와 신곡 발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 발표된 Still Sucks 앨범은 의외의 호평을 받으며 이들에게 산소 호흡기를 달아주게 됩니다. 뉴메탈 원조 밴드로서 건재함까지는 아닐지라도 이런 식으로 사라지진 않겠다며 멋지게 버티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유럽과 남미에서는 뜨거운 팬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SNS를 통해 새로운 젊은 팬들과도 소통하며, 밴드의 유산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메탈이 주류에서 멀어진 지금도 limp bizkit은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음악적 활동을 지속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입니다.